[Travel] 한라산 기행문 - 백록담(성판악탐방로) 편

TRIP1849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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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올해 제주는 예년에 비해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1월에 한 번 기회를 놓치고 제대로 된 설산을 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던 차에 반가운 눈 소식을 듣고 날이 풀리면 바로 등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왠지 이번 눈이 올겨울 마지막 눈일 듯싶어 백록담 가는 길에 잠깐 사라오름을 들르기 위해 성판악 코스로 계획했다.



새벽 4시 반에 기상.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아직은 겨울인지 해가 뜨지 않았다. 성판악 입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다. 주차장도 만석으로 갓길에 차를 세우기 시작한다. 서둘러 등산 장비를 챙기고, 심호흡 한 번과 함께 한라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하얀 눈을 밟고 천천히 올라가던 중 깜깜하던 뒤에서 빛이 느껴졌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이 시간, 이 장소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주황색 여명과 하얀 눈의 환상적인 대비이다.



속밭 대피소를 지나 사라오름 입구까지는 여러 등산객들과 섞여 기차놀이를 하듯 올라왔다. 진달래밭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 계획대로 사라오름 등반로로 들어섰다. 지난가을 물이 가득 차 환상적인 풍광을 보여주었던 산정호수가 새하얀 설원으로 변해있길 기대하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산정호수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눈이 많지 않아 약간은 실망했다. 한 5년 전 올라왔을 때 사방이 하얀 사라오름이 주는 감동을 다시 얻지 못하고 서둘러 다시 백록담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사라오름에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 하루에 오름 다섯 곳을 오르내린 것보단 힘들었지만 - 적당히 오를만했다. 진달래밭에서 보이는 백록담 봉우리가 조금의 감동을 주려고 한다. 마지막 코스를 무사히 오르기 위해 아침 6시 50분에 출발해 처음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잠깐 앉아 쉬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을 가기 위해선 12:00 전에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해가 지기 전 하산을 할 수 있다. 출입통제를 하고 있는 국립공원 직원의 말에 따르면 - 눈도 훨씬 많고, 길이 없어 - 이제부터의 길이 지금까지 올라온 길 보다 몇 배는 힘들다고 한다. 이미 정상을 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얼마나 흔들릴지는 의문이다.



진달래밭 대피소를 지나 정상을 향해 그리 오랜 시간을 오른 거 같진 않은데 다리가 무거워졌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난이도다.



끝이 보이는데 끝이 나지 않는다.



이 고비만 넘으면 이 능선만 넘으면 다다를 거 같은데 또 고비가, 또 능선이 나온다.



마침내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게 보였고,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드디어 정복했다.'에 대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오르기에 급급해 보이지 않았던 풍경도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 쌓인 백록담, 발아래 깔려있는 구름, 그 밑에 보이는 마을,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까지 또다시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번엔 환상적인 풍광에 대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제 내려갈 걱정이다.


글  당근  /  편집  트립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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